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다.
서양과 동양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다. 흔히들 사업을 크게 성공 시키거나 장사를 잘 하는 사람들을 보고 그 사람은 보는 눈이 다르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서양과 동양은 보는 눈이 다르다. 여러가지 실험을 통해서도 서양과 동양은 세상을 보는 눈이 서로 다르다. 이런 보는 시선의 높이가 서양을 높은 수준의 그러니까 자연과학 분야를 비롯한 산업전체를 리드하고 선도하는 대륙으로 만들었다.
서강대 철학과 최진석 명예교수는 동양의 서양에 대한 완전 참패의 역사적인 사건 하나를 중국의 아편전쟁으로 본다. 동양의 큰 대륙이 콧 대를 높이며 영국의 무역을 거절하고, 줄다리기를 하다가 결국 마약 아편이라는 영국의 전략에 완전히 몰락하였고, 결국 서양의 식민지 지배로 들어가게 되었다. 모든 제국들은 흥망성쇠를 따르기 마련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중국도 제국의 시절이 있었고, 서양의 로마도 제국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두 제국은 역사적으로 모두 망하고 사라졌다. 특히 동양권은 세계사적으로 중국, 인도, 몽골 등이 제국의 형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의 근대 문명과학의 발달로 철저하게 짓밟혀 버려졌다. 제국주의와 세계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양은 그야말로 형체도 없이 정신과 물질 모든 면에서 황폐해 졌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과거 찬란하던 동양의 역사가 근대외 들어와서 왜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버린것인가.
기독교와 니체
유럽은 기독교 사회였다. 인간은 교리를 믿으면 천국을 들어가고, 그렇지 못하면 지옥을 간다는 아주 단순한 논리를 가진 대륙이었다. 그런 곳에서 코페르니쿠스니, 데카르니, 니체와 같은 엄청난 철학자들이 등장하면 세상을 의심하지만 지금 이렇게 의심하고 생각하는 나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하는 데카르트의 말은 유명하다. 그렇다 인간이 위대함은 사고를 하는 능력에 있다. 동양과서양의 사고는 어떻게 다른가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으로 시작되는 서양 고대그리스 철학에서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설명이다. 특히 플라톤은 세상을 보는 인식론에서 절대 진리적인 세상인 이데아를 강조하였다. 이데아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절대적 진리의 세상이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이고 또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중요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원리 삼각함수나 피타고라스 같은 원리를 찾고 황금율을 찾아서 그 이데아의 세상을 증명한다. 보이지 않지만 원리가 있는 진리의 세계다. 이런 사고는 점차점차 시간히 흘러 아무리 기독교를 강조하는 나라에서도 코페르니쿠스 같은 지동성을 만들어 내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수치화 한다. 과학은 수치화다. 모든 것은 수치화되어야 하고, 수치회 되지 않으면 측정할 수 없고 측정을 하지 못하면 개선할 수 가 없다.
동양을 비롯한 한국은 보는눈을 길러야 한다. 아니 세상을 보는 눈을 적어도 서양처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서양이 만들어 놓은 판 위에서 계속 이용만 당할 뿐이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수학 함수, 과학원리, 원자론, 핵물리학 등 모든 것이 유럽과 미국에서 출발하였고, 명서들도 모두 거기에서 나왔다. 아이들 교육을 네모 모양의 교실에서 전국민들을 똑 같은 커리큘럼을 가르치는 것은 좋으나, 제발 사고하는 훈련 세상을 보는 훈련을 길러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선도국가 선진국으로 가는 밑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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