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삶의 목적은 행복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면서 플라톤의 스승인 철학자이다. 너무나 유명하기에 설명이 필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강조했다. 덕을 갈고닦아야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고, 행복이야 말로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이유고 목적이다라고 하였다. 우리가 공부를 하고 좋은 직업을 가지는 거, 좋은 집을 사는 거, 좋은 차를 사는 거 모두 행복해지기 위한 인간의 욕구이고 최종 목적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행복을 추구하고 행복해지기 위한 공식은 무엇인가?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한 인간의 욕심, 좋은 차를 가지고 싶으면 더 좋은 차를 가지고 싶고, 인가의 욕심은 끝이 없어 만족하기기 싶지 않다. 동양의 불교와 노자의 철학적 입장에서 본다면 행복은 자기 마음 먹기 달려있다고 하고, 물처럼 살아야 한다라고 한다. 여러 입장과 복잡한 이론이 있겠지만 동양철학은 내면의 욕심을 컨트롤하면서 물질적이 삶보다는 내면의 충만함을 추구하는 삶을 추구하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도 그런 방향일까??
2. 덕의 함양
칼의 목적은 무엇을 완벽하게 자르기 위한 것이다. 완벽하게 자르기 위해 칼은 아주 예리한 칼날을 가져야 한다. 예리한 날카라운 칼이 덕인 것이다. 이 덕을 갈고 닦아야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다. 사람의 덕은 무엇인가 도덕과 윤리를 학습하고 공부하고, 잘 다듬어야 한다. 잘 다듬는 길은 중용이라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고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완벽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중용이 딱 어떤 상태라는 것은 도저히 설명회 불가능할 것 같다. 무슨 공식이나, 길이와 무게처럼 정확한 측정치가 있어서, 무슨 시험처럼 90점을 맞추면 모든 사람이 덕을 쌓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어렵다. 이렇게 어려우니 수치화되지 않고 측정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래서 행복해지기 어려운가 보다.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가다듬고 학습해야 중용에 이를 수 있을 것 같다.
지나가는 사람과 우연히 부딪혀 상대방이 다쳤다라고 해보자, 내 입장에서는 살살 부딪힌 건데 마침 부딪힌 사람이 허약한 사람이고 몸에 멍이 들어서 병원에 가고 병원비가 많이 나오고 하면 간단한 사과로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더 커진다. 얼마로 지원을 하고 얼마나 사과해야 하는지 모호해진다. 중용을 찾기가 어렵다. 이건 체조선수가 평균대에서 균형을 기가 막히게 찾는 거, 어떤 막내기의 중간을 찾아서 균형을 정확하기 이루는 거, 어떻게 해서 한번 균형을 찾아서 잠깐 유지야 할 수 있겠지만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하면 그 균형은 이내 깨지고 다시 균형을 찾아야 한다.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균형을 찾는데 많은 내공이 필요하다.
3. 덕으로 완성되는 중용
그냥 딱 봐도 아는 수준으로 내공을 키워야 한다. 어느 도자기공이 오랜 시간 도자기를 굽고 꺼내어 이리보고 저리 보고 확인하고 색감을 보고 우수상품을 골라내는 것처럼, 어떤 업무를 오랜 시간 연마하여 딱 봐도 자기가 원하는 수준에 제품이 만들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장인처럼 우리도 덕을 쌓고 닦아서 균형을 잡는 연습을 하여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딱 중용의 행동과 생각이 나와야 하는 것 같다. 쉽지 않은 길이다. 그 길을 찾고 가야 행복으로 이르는 길이라고 하니 많이 연습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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