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목표는 명확하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서 배우고 성장한다. 나아가서 스스로 존재를 증명하는 자립을 하게 된다. 자립이야 말로 교육의 명확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자립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 스스로 나를 증명해야 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많은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면서 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4지 선다 어려운 문제를 택하는 교육은 자립을 시킬 수 있는가.
1. 성교육
특이하게 독일은 성교육을 일찌감치 시킨다. 이런 배경은 확실하다. 자립이 되기 위함인데, 일단 나를 완전하게 성숙시켜야 가능한 것이다. 더불어 이것은 정치교육과도 연관이 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에고, 수퍼에고, 리비도 이렇게 3가지 개념의 중돌로 자아가 완성된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자아인 에고는 리비도라는 성충동에 의해서 괴롭힘을 당한다. 슈퍼에고는 사회적인 규범, 도덕, 윤리라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에고는 리비도와 슈퍼에고의 충돌 속에서 형성이 되는데, 슈퍼에고만을 강조하는 교육시스템에 에고는 정상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리비도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리비도에 의해 유혹을 받는 이간은 당연한 생물학적인 본성이다. 여기서 리비도에 의해 죄책감을 느끼고, 이런 초자아와 에고와의 개념을 정확히 연결시키지 못하고 넘어가면 죄책감을 가진 상태로 자라나게 된다. 이런 자아는 권위에 굴복하게 되는 모습으로 자라나 자립이 불가능하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 성교육을 왜 정치 개념과 연관시키어 교육시키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모두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은 적 없고, 단지 생물학적으로 정자와 난자에 의한 교집합으로의 탄생을 생물학적인 용어로 정의한다. 깊은 대화와 물음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자아 형성에 대한 깊은 내면 의식하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를 분석한 정신분석학의 깊이 있는 이론임을 알 수 있다.
2. 정치교육
독일은 과거 정치적으로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아직도 그 죗값을 치르고 있다. 인류 만행 사건은 잔혹하기 그지없는 대학살의 수진이 자행되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날 수 있었던 가를 독일은 아직도 가르치고 있고, 불행한 과거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어린 시절부터 저항교육을 가리킨다. 심지어 학생들의 수업시간에 권위에 저항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 선생님과의 수업과 토론에서 무조건 반대하는 수업을 진행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권위가 저항받을 수 있고, 반대의 의견을 가지는 행동이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체득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과정들은 교실에서 한정되어 있지 않고, 도로 위에서 시위로 이어진다. 깊은 반성에서 나오는 진정성 있는 교육으로 보인다. 이러한 것들은 모든 나라에서 시행됨이 옳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교육 없이도 대한민국은 민주화를 이루어 내고, 군부정권에 도전하는 수많은 저항운동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그 저항 의식이 기득권을 뒤엎었지만 더 깊이 침투하지는 못했다고 함석헌 선생을 말했다. 저항의식은 단지 젊은 시절 추억으로만 자리를 잡았지, 사회 깊이 내면화되어 있으면 이렇게 엘리트층에서 부패와 사건이 만연해 있지는 않을 것이다.
3. 생태교육
코로나 이후 기업과 단체에서 더욱더 강조하는 교육이 되고 있다. 그전에도 이미 독일에서는 자연과 나를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공존하는 삶의 교육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나와 자신의 관계 그리고 사회와 나와의 관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연과 나와의 관계가 전부이다. 우리는 자연과의 나와의 관계를 소홀히 한다. 그냥 일회용품을 이렇게 저렇게 아무렇게나 자주 사용하고, 생활의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편한 것에 익숙한 우리는 불편한 것이 얼마나 나와 자연과의 관계를 이롭게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결국은 내가 삶은 잘 건강하게 영위하게 되는 방식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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